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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의 원조 드러머들에 대해서
요즘은 일붕이들뿐만 아니라 락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즐겨듣는 너바나.이 너바나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2집 'Nevermind'를 통해서 접했을 거고, "2집만" 듣는 사람의 비율이 많을 거임. 나도 그랬었고. 그래서 2집 이전의 너바나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그냥 '커트 코베인'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음. 이거때매 Name 5 songs 같은 말이 나왔겠지?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 이 라인업으로 로 쭉 운영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그런 사람들이 너바나를 조금 더 잘 알고, 곡을 5개 이상 말할 수 있도록 데이브 그롤이 너바나의 드럼으로 활동하기 전의 원조 드러머들을 알아볼 계획임.1. 아론 벅하드(Aaron burckhard) 1987/4 ~ 121-1. Fecal matter우선 드러머의 역사를 알기 전에, '너바나' 이전의 커트 코베인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아는게 좋음.커트 코베인은 너바나를 만들기 이전에, 여러번 밴드를 만들고 엎었던 것으로 알려졌음.커트는 'Fecal Matter'라는 밴드에서 활동하게 됨. 이 밴드는 다른 밴드 'Melvins'에게 도움을 여러번 받았고, 멤버로 활동도 하는 등 서로 좋게 교류를 하는 사이였음. 곧 설명할 커트의 친구 '데일 크로버'가 Melvins에서도 활동하고, Fecal Matte의 베이시스트로도 활동을 했는데, 이 데일 크로버의 이웃이 '아론 벅하드'였음아론은 데일의 Melvins 합주를 따라갔고, 거기서 커트와의 인연이 시작됐음. 이후 멤버 버즈 오스본이 베이스 앰프를 사주지 않아서 삐진 커트가 밴드를 해체했음.커트는 밴드의 데모 테이프를 크리스에게 주며 자기랑 밴드 활동을 해보자고 말했고, 크리스는 데모 테이프 속의 Spark thru를 듣고 오케이 했음. 이때 만들었던 밴드의 이름은 'Skid row'.근데 당시 커트와 크리스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드럼도 칠 줄 알고 차도 가지고 있는 아론 벅하드를 스키드 로우의 드러머로 고용했음.애기시절의 커트Fecal matter의 멤버https://youtu.be/WkSPoZpWWSc1-2. 아론 벅하드의 활동과 해고87년, 너바나는 3월 3일에 한 하우스 파티에서 기념비적인 첫 공연을 하게 되었음.https://youtu.be/FMhB0z-PdDkEP나 컴필, 1집을 들어봤다면, 익숙한 곡들이 몇개 보일거임. 이 공연 후 아론은4월부터 너바나에서 공식으로 활동하다가, 12월에 탈퇴하게 됨.탈퇴한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문제. 커트랑 크리스는 직장도 없었고, 밴드는 완전 무명이었기에 돈 나올 구멍이 아예 없었음. 아론은 이때 동네 맥도날드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직장에서 밴드 활동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주자, 어쩔 수 없이 탈퇴하게 되었음.또한 아론이 밴드 활동에 진심이 아니었던 모습이 커트의 눈에 띈 것도 탈퇴 이유중 하나라고 봄. 성격이 괴팍해서 다른 사람들과 몸으로 싸우는 일이 잦았고, 술을 마시느라 밴드 합주와 리허설에 빠지는 일이 잦았던 것이 커트의 눈에 걸렸던 것 같음.아론이 참여한 녹음을 듣고 싶다면, 컴필 'With the lights out'에 실린HeartbreakerAnorexorcistWhite Lace And StrangeHelp me, I'm HungryMrs.Butterworth 를 들어보면 됨.https://youtu.be/meLJh22zCjkhttps://youtu.be/I-f2vNdGfMQ2. 데일 크로버 (Dale crover) 1988/01~ 02아론이 밴드를 그만두면서 드러머 자리에 공백이 생겨버린 커트는 드러머를 급하게 구했고두번째 드러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미 Melvins의 드러머로 활동하던 데일 크로버였음.아까 Fecal matter를 설명하면서 말했던 사람인데. 자기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점, 커트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의 드러머라 고용했다고 함. 근데 이미 Melvins에서도 바쁘게 활동하던 사람이라, 너바나와는 오래 가지 못하고, 몇달 활동하다가 탈퇴했음. 그래도 그 짧은 기간동안 Dale tape라는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EP 'Incestciede'에 몇곡 실었고, 1집 Bleach에 Floyd The Barber, Downer, Paper Cuts를 넣고 갔음. https://youtu.be/goDwSBqUUbM3. 데이브 포스터 (Dave foster) 1988/03~ 05사진에서 맨 오른쪽데일이 너바나를 떠나면서 너바나에게 추천한 드러머임. 이 양반도 크로버처럼 활동 기간이 엄청 짧은데.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음.우선 애버딘과 리허설 장소인 타코마의 거리가 멀었음. 그러다 보니 각종 연습과 리허설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커트는 슬슬 짜를 준비를 하던 와중.데이브가 애버딘 근처 '코스모폴리스'라는 도시의 시장 아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남. 2주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2000달러 이상의 치료비를 내야했고,커트는 이때 데이브를 해고했음. 하필 딱 세션 녹음 전에 일어난 일이라, 공식적인 녹음물은 없음.4. 다시, 아론 벅하드(Aaron burckhard) 1988/03 ~ 05?이건 나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겠는데, 아마 데이브 포스터가 해고당한 시기에 짧게 드러머로 있었던 것 같음.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커트의 차를 가지고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한테 체포됐고, 커트의 차는 당연하게 압수되어버림.화난 커트는 바로 해고했음. 최근에 아론 벅하드와 인터뷰를 한 영상이 있는데, 자기도 음주운전 한게 미안하다고 함.5. 채드 채닝(Chad channing) 1988/06 ~ 1990/05사진 정 가운데 맨 앞데이브가 활동하던 시기에 비공식적으로 녹음에 참여했던 드러머였음. 이후 데이브가 해고되고, 네 번째 드러머로서 활동하게 되었음.앞서 설명한 다른 드러머보다, 채드 채닝은 너바나라는 밴드의 역사에 꽤 많은 일을 했음.일단 합류 몇주 후에 곧바로 'Love Buzz'를 서브 팝을 통해 발매하면서 데뷔 했고,역시 뭐니뭐니해도 1집 'Bleach'에서 Floyd The Barber', 'Paper Cuts', 'Downer'를 제외한 모든 곡에 드럼으로 참여했다는 점임.https://youtu.be/JIx2H-plXdUhttps://youtu.be/7E-KAP359ys이 글을 계기로 너바나 1집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드럼의 때깔이 확실히 데이브 그롤하고는 다름.내가 드럼은 완전히 문외한이지만, 진짜 드럼을 때린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쨌든 1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딱 맞다고 생각함.1집이 2집만큼 엄청난 성과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앨범 내고 곳곳에 투어도 돌면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는데에는 성공했다고 봄.참고로 사진 왼쪽에 있는 뽀글머리는 '제이슨 에버맨'이라는 사람임. 채드 채닝이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의 기타리스트인데 너바나 음악에 매료되어서 Bleach 앨범 제작비를 대주었다고 함.Bleach 앨범 커버에 보면 텔레캐스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제이슨임. 앨범 크레딧에도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적혀있지만, 실제로 녹음에 참여한 적은 없음.이건 커트가 제작비를 대준거에 감사해서 넣어준 거고, 그래도 Bleach 투어를 도는 동안 너바나의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음. 세컨 기타로 참여하지만, 커트가 기타를 부시면 본격적으로 기타 연주를 맡았다고 함.근데 워낙 우울한 성격과 그런지에 깊이 빠져있어 멤버들이 기피하는 대상이었고, 커트는 Bleach 투어가 끝나자 마자 제이슨을 해고했음. 투어만 돌긴 했지만, 'With The Lights Out'에 있는 D.ive 데모 버전에는 제이슨 에버먼이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음. 그렇게 투어를 끝내고 활동을 하다가, 90년 4월에 2집 Nevermind 발매를 위해서 매디슨에 있는 스마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는데,적당히 데모를 만들어서 테이프를 게펜으로 보냈음. 커트는 메디슨에서 녹음한 레코드를 2집 앨범에 넣고 싶었지만, 메이저 레이블인 게펜이 추구했던 세련된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녹음해서 지금의 Nevermind가 탄생했음.채드는 커트가 송라이팅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말뿐만이었다는 걸 알고 작곡에 참여하지 못한채 드럼 발사대로 연주만 하는 것에 싫증이 났고,게펜과 계약을 한다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어도 자신이 행복할지는 모르겠다는 의심 때문에 전보다 너바나 활동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그렇게 영감이 사라진 채드의 드럼 연주가 전보다 대충이라는 것을 느낀 커트와 크리스는, 차를 타고 먼 거리에 있는 채드의 집에 와서 탈퇴에 대한 얘기를 했고,결국 90년 4~5월 투어를 마치고 상호 합의 후에 너바나를 탈퇴했음.참고로 크리스의 얘기에 따르면, 채드에게 얘기를 하기 위해 커트와 왔던 긴 드라이브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함. 앞서 설명한 스마트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2집의 데모는 Nervermind Deluxe Editon, Super Deluxe Edtion에서 들을 수 있음.https://youtu.be/6Hc8DKJ9kYAhttps://youtu.be/xAy---wp_DQ이건 채드가 참여한 In Bloom의 녹음인데, 우리가 아는 2집의 깔끔한 사운드와 다르게, 1집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걸 볼 수 있음.아쉽게도 채드는 탈퇴한 채로 2집의 녹음을 시작했지만, 채드는 공식적으로 Nevermind의 Polly를 녹음했음.Polly에 드럼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곡 중간마다 라이드 심벌을 치는 부분이 채드가 참여한 부분으로,게펜의 요구에 맞춰 녹음을 완전히 다시 하는 과정에서, 커트가 이 Polly 만큼은 다시 녹음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함.그리고 2014년, 너바나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수상했을때 데이브 그롤이 In Bloom의 드럼 라인은 채드가 지은 거라고 하는데, In bloom 말고도, 2집 곡의 드럼 라인은 채드의 드럼 라인을 바탕으로 데이브 그롤이 조금 추가한 것 외에는 똑같다고 함.6. 댄 피터스(Dan Peters) 1990/07 ~ 1990/09채드 채닝이 탈퇴하고, 약 2개월 정도 활동했던 드러머, 이 양반도 데일 크로버처럼 세션으로만 잠깐 참여했던 거라, 별다른 활동을 하진 않았음.그래도 'Sliver'를 녹음했고, 싱글이랑 뮤비도 내고. 그래도 데이브 포스터 얘보다는 열심히 했음.https://youtu.be/QECJ9pCyhns댄이 짧게 활동하는 동안, 아까 말한 Melvins의 팬이었던 드러머 데이브 그롤은, 원래 활동하던 밴드가 해체되고 Melvins의 버즈 오스본에게 조언을 구했음.다행히 오스본은 마침 드러머를 구하던 너바나와 연락해 오디션 자리를 구했고, 2집 당시의 너바나가 추구하던 사운드와 딱 맞았던 데이브를 고용했음.마지막으로, 커트가 크리스와 제일 먼저 시작했던 'Sellout'이라는 커버 밴드의 드러머로 참여했던 'Bob Mcfadden'이라는 사람도 있는데,이 당시의 정보는 구하기도 힘들고, 너바나와는 큰 관련이 없어서 제외했음.맨날 눈팅만 하다고 정보글은 처음 썼는데, 부디 잘 봐줬으면..
작성자 : ㅇㅇ고정닉
개인적인 세계 문학 인상 - 동아시아
독붕이들의 반응이 꽤 뜨거워서 계속 써보기로 했음 뜨거운 관심 ㄱㅅㄱㅅ - 중국 문학 현대 중국 문학의 시조 루쉰 12년 노문상 수상자 모옌 현대 중국 소설가 옌롄커 허삼관매혈기의 저자 위화 동아시아의 근본 국가 중국이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인문학이 초기화된 경험이 있어서, 전반적인 소프트 파워는 국력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음. 중국 문학의 시조인 루쉰부터 시작해서,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지나가고 난 이후 세계적인 현대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음. 문화대혁명이라는 일대 사건과 공산당의 독재, 중국인들의 쉽지 않은 삶 덕분에 노문학처럼 소재 거리는 많은데, 자꾸 검열되는 슬픈 나라. 중문학은 여러모로 국내 노년층이 공감할 법한 삶이 자주 묘사되는데, 쉽게 말하면 검정 고무신에 가까운 개발도상국에서의 삶이 잘 묘사됨. 그리고 작품 안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이 불러온 사회적 부조리와 광기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드러날 때가 많음. 중국 소설들은 동아시아 소설 중에서 내면에 잠수하는 묘사보단, 직관적이고 역사가 불러온 온갖 서사들 때문인지 개발도상국 특유의 외향적인 느낌임. 보통 지금까지 읽어온 중국 작가들의 인물은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낼 때, 상념 대신 행동과 대사로 드러내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더라. 그나마 이렇게 체제 비판에 가까운 문학이 나와도 어느 정도 봐 주던 덩샤오핑, 후진타오 정권은 한참 전에 끝장난지라, 앞으로 중국 문학은 더더욱 검열될 예정이라 안타까움... -일문학 현대 일본 문학의 시조 나쓰메 소세키 68년도 노문상 수상자이자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독갤의 영원한 우상 미시마 유키오 94년 노문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동아시아 문학의 전통적인 강자인 일본 문학은 중국이랑은 약간 상극인 이미지가 있음. 빠른 근대화 때문인지 개발도상국에서나 볼 법한 억척스러운 삶을 조명하기보단, 유약하거나 상처받은 지식인 주인공들의 사색 대잔치라는 인상을 주는 편. 물론 모든 일본 문학이 이런 건 아닌데, 전반적으로 아시아의 독문학 포지션인지 일본 거장들의 소설은 다소 음침하고 우울한 면이 드러남. 좌절이나 실패에 민감하고 무의미 앞에서 할복할 것만 같은 이미지도 없지 않음. 세계적으로도 노문상 작가를 여럿 배출하고, 일본 내부에서도 아쿠카타와상이라는 걸출한 상도 존재해서 일문학 최고 아웃풋들은 보통 아쿠카타와상을 젊은 나이에 수상하고 경력 쌓아서 노문학까지 받는 걸 보면, 상당히 공신력 있는 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음. 개인적으로는 전후 일본 작가들을 좋아하는 편. 독갤 갤주인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과 어록은 설명이 필요 없고, 독갤 내부에서도 일문학은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 보면 한국 독자들과 정서가 상당히 잘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음. 인싸픽으로 가면 일본산 소설이야말로 한국 문학 시장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음. 현대 소설로 잘 나가기 때문에, 앞으로도 걸출한 작가가 꾸준히 나와주리라고 믿음. -한국 문학 시인 백석 현대 한국 소설가 황석영 16년 부커상 수상자 한강 본인이 한국 소설을 열심히 퍼먹은 편은 절대 아니니까, 어느 정도 걸러 듣길 바람. 이건 내가 느낀 인상에 불과함. 일명 묵은지와 겉절이. 독갤 내에서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림. 대한민국 수립 이후 기준으로 현대 한국 문학의 스타일은 중국 문학에서 볼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감수성과 투쟁사를 드러내는 원로 작가들과 세련되고 각박한 현대 한국 사회의 단상을 보여주는 작가로 나뉜다고 생각함. 이런 점에서 살짝 과도기에 있다고도 느끼는 게, 옛 원로들은 억척스러웠던 20세기의 삶을 그리고, 70년생 이후의 작가들은 굵직한 현대사가 이미 끝나 완숙해지고 남은 사회에서 먹을 것 없고 우울한 현대 사회에 휩쓸리는 삶을 그리는 작가들도 늘었다고 생각함.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문학의 주류는 격렬했던 대한민국 근대사를 중심으로 산업화, 민주화 등 투쟁적인 서사의 소설이 많았는데, 10년대 후반부터는 각박한 사회상 때문인지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들도 꽤 늘었다고 느낌. 뭐 개인적으로는 원래 한국 문학에 이런 면이 존재했고, 시대가 완성되자 울적한 감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보긴 함. 하지만 이건 본질을 잃은 게 아니라, 오히려 국내 문학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사실 반공이니 민주화 투쟁이니 하는 얘기는 다 장년층 이야기가 되어버린 현대에선 이게 맞다고 봄. 다만 앞으로도 그간의 격렬한 역사를 토대로 꾸준히 서사 중심의 이야기도 써주길 바람. -동남아시아 문학 인도네시아의 작가 프라무댜 아난다 투르 전쟁의 슬픔으로 유명한 베트남 작가 바오 닌 솔직히 아프리카, 중동 문학보다 훨씬 힙한, 힙스터의 극치에 가깝다. 오늘날 독갤에서는 정말정말 가끔씩 동남아 문학을 읽어보고 독후감을 올림. 동남아시아도 동남아시아 나름인 것이, 동남아시아에 한자 쓰는 공산당 베트남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왕실체제를 유지하고 불교를 믿는 태국도 있고, 세속적이지만 이슬람을 믿는 인도네시아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음. 보통 국내에는 그나마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이렇게 동남아의 세 대국을 위주로 번역되는 느낌이 없지 않음. 특히 인도네시아는 독자적인 문학 역사가 존재한 거 같은데, 국내 번역은 멸망한 수준임. 무엇보다도 국내 사정상 동남아시아에 독자적인 문학이 존재한다는 데 큰 관심이 없음. 동남아에서도 제국주의 시대, 독재와 전쟁을 거쳤고, 상당히 격렬한 현대사를 보내오면서 꽤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을텐데도 번역은 심각하게 안 되는 수준... 사실 그나마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문학이 번역되는 이유도 그나마 화자 수가 많아서 전공자가 존재하기 때문인거 같음.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 비하면 문화 교류가 잦은 베트남이 그나마 많이 번역되는 편.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이런 만큼, 아마 동남아시아에서도 소국에 속하는 나라의 이야기가 원전번역되는 일은 상당히 먼 이야기가 될 거임. -중앙아시아 문학 백년보다 긴 하루의 저자이자 키르기스스탄의 작가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여기쯤부터는 이제 튀르크, 페르시아, 이슬람의 영향이나 러시아의 입김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함. 그나마 문화적으로 아예 멀지만은 않다고 느끼는 몽골, 러시아의 앞마당 취급받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문학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랄 독자들까지 있으니, 인지도는 거의 동남아시아보다 나을 거 없는 수준임. 출판사 입장에서도 동남아는 문화적, 지리적으로 아예 멀다 이런 느낌까진 아니니까 번역을 시도해보는데, 얘들은 진짜 멀기도 하고 문화권마저도 구공산권 출신이어서 번역이 될 가망도 거의 없음;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러시아-소련 문학의 영향이 강할 거라고 추정함. 어쩌면 소련 시대에는 문예지나 출판 그룹을 러시아 작가들과 공유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라, 상당히 궁금하긴 한데... 당장 노문학도 새로운 소설들이 쉽게 번역되지 않는데, 전공자 수도 한줌단인 중앙아시아 문학을 원전 번역하는 건 쉽지 않을 듯 싶음. 차라리 아프간 소설인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처럼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영어 배워서 쓴 이야기들이 번역되는 걸 기다리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음. 근데 아마 이거도 불가능해보임. 사실상 현재에는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 동남아 문학이 알음알음 번역되는 거에 비하면, 얘들은 아예 번역이 된 작품이 흔치 않음. 다산세계문학총서에서 한 작품 내준 거 말고 근 10년동안 새 작품이 번역됐단 소식을 들은 적이 없음. 그나마 국내 번역에는 전집에 한두 작품 정도 중앙아시아 문학이 수록돼 있음.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 현대 몽골 배경 작품인 에리옌이라는 작품도 존재하니, 세계적인 문명의 교차로라는 역사적 흔적과 이국적인 세상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들도 읽어 볼만 하다고 생각함. - dc official App
작성자 : 헤세조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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