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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썼던 거 여기에도 올림미당. 관악산

고정닉_산타(175.119) 2011.03.04 12:35:52
조회 599 추천 0 댓글 17

어제는 추웠어... 정말 추웠어.

새끼는 이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뺄 때도 조심해야 돼. 슬기면 꽤나 아리거든. 어제 상처를 본 친구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놀랬지.

 

 

맨날 길도 없는 바위로만 다녀서, 또 4시간 뒤에는 수와 보기로 했기 때문에 서울대를 가로질러 보이는 길로 오르면 빨리 오를 줄 알았다. 남들은 개강해서 학교를 오가는데, 나는 산을 오른다. 남들 다 가는 새터 때도 30, 40 형님들하고 북한산에 올라 소주 깠다. 한 햄이 챙겨 온 희석주가 아닌 증류주.

 

3:30.

교정을 잰걸음으로 가로지르는데

"야!"

아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내서 쓰는데도 살짝 소름이. 어린? 여자의 목소리. 재빨리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앞뒤를 살핀다. 학생들은 한참 멀찍이다. mp에 잡음이 녹음됐을 수도 있으니 되감기 해서 다시 듣는다.

... 또 홀렸구나. 피식 웃고, 오늘 산도 \'귀행\'이 되겠거니 하고 계속 오른다.

 

지금은 알지만, 작은 댐이 있는 \'저수지\'를 들머리로 해서 물소리를 들으며 오른다. 출발한 지 1시간만에 햇볕 드는 바위에 걸터앉아 소시지 하나와 애플 파이 하나를 꾸역꾸역 먹고 손이 얼기 시작해 서둘러 다시 출발한다. 눈 밑으로 물이 흐른다.

아무도 없다. 내 앞에 있는 건 오늘인지 언제였는지 모를 한 \'사람\'의 발자국뿐.

 

없다. 발자국이 없어졌다.

바위에 난 기스 자국 등으로도 사람이 다닌 흔적을 아는 정도의 tracking은 자연히 익혀졌지만, 온통 눈밭이라 알 수 없다. 평소 같았으면 길이 있든 없든 막 갔겠지만 오늘은, 해는 진작 지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춥고(하의 1, 반팔 1 + 긴팔 1 + 크게 두껍지 않은 외투의 단출한 차림), 근력 또한 수련을 오래 쉬어서 안 좋은 상태였고, 귀행의 조짐이 있었기에 패닉의 입질이 온다.

 

오르자. 아직 초입인데 포기하고 갈 수는 없잔아. 이 길로 오르자. 수풀의 우거짐, 낙엽의 두께를 보면 한동안 쓰이지는 않았어도 조심히 오르면 이쯤이야. 쩌기 위에 햇볕이 드는 데까지 가 보자. 햇볕이 드는 걸 보면 능선일 거야. 저기까지 오르는 데 성공하면 내일, 그래 내일 찾아 가 보는 거야.

 

올랐다. 발자국이다! 뒤를 돌아본다. 여..여기를 오른 건가. 으흐흐.

더 이상의 난관은 없을 줄 알았어.

 

바위 산, 바위, 바위... 바람은 또 왜 이렇게 칼바람인지. 정말 이건 아니다, 한 순간만 미끄러져도 진짜 뒤진다, 뒤진다... 생각드는 바위가 나올 때마다 평소에는 피해만 다니던 우회로를 찾아 보았지만... 없다. 앞의 눈 덮힌 바위 산을 바라보면서 몇 번을 갈등했는지 모른다. 포기하고 돌아갈 것인가, 다시 한 번 목숨 걸고 넘을지.

몇 개의 바위를 넘고 나서는(하나 넘을 때마다 또 나오지는 않겠지 생각했다) 갈등할 필요도 없었다. 돌아가는 것보다 \'각오\'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쉬웠으니까.

 

나는 왜 오늘(어제), 남들 다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에, 아버지가 챙겨나 가서 안 쓰면 도로 갖고 오라는 아이젠도 두고, 여기에 와 있는 걸까. 사실 자기 파괴적인, 그 어떤 게 있다. 다분히. 혹 다치면 룡이 아픈 만큼은 나도 아플 수 있겠지. 근데 나 혼자 아플 거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다 고 쓰려는데 뭐 이리 안 써지냐...

 

그런 마음으로, 내려 놓자, 내려 놓고 오자 하고 왔으면서 내내 생각한 건 룡룡룡 / 127시간, 127시간... 왜 남들한테는 여가 생활인 등산이 나한테는 왜 항상 extreme sports가 되어 버리는 걸까.

어제는 어느 정도였냐면, 집에 와 한참을 뒤척이면서 자면서도 그 아무런 안전 장구 없이 넘었던 칼바람, 암벽들만 생각하면 공포가 엄습.

 

정말 죽어라, "으아쌰~!", "으아아!" 별별 기합 소리 내어 가며 정상에 올랐다. 클클크ㅡ킄르, 내 생애 그 사람 많은 관악산에 아무도 없는 정상은 또 처음이었고, 오르는 동안에도 사람 하나 못 봤다. 본 건 까마구 울음 소리뿐. 마, 나 아직 안 죽었다.

 

바람이 너무 아파 그나마 바람이 때리지 않는 구석에 가 앉는다. 보온병 물로 컵라면을 끓이려고 잠깐 장갑을 벗어 놨는데, 땀이 얼어 버렸다. ㅋㅋㅋ 너무 추워서 땡기지는 않았으나 이왕 사온 거, 막걸리를 덜덜 떨면서 한 잔 마신다. 컵라면? 풀어질 생각을 안 하여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정리하고 일어나려고 스댕에 조금 남은 막걸리를 마저 마시려는데, 그사이에 아슉이 돼 버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이 뻘겋게 얼었다. 언 장갑이래도 끼는 게 낫겄다.

 

도저히 다시 암벽들을 타고 내려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전철을 타더라도 과천으로 내려 가기로 결정. 오르면서, 내려가면서 몇 번을, 손가락 끝이 퉁퉁해져 동상 걸릴 것 같은 손을 안쪽 허벅지에 대 녹였는지.

 

달은 뜨지 않고, 별빛에 의존해 내려간다.

 

 

웅성거림. 아오, 소름!!

알아들을 수 없는 몇 여자 귀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의 큰 바위? 암벽에서.

"야! 너 거기 있지?"

-_-;; 나무들하고도 얘기하고 다니는데, \'귀\'라고 못할 건 또 없잖아?

그쪽 방향에서 묘한 바람만이 휘잉 하고 분다.

"등가 교환? 글쎄. 뭐를 준담."

거래를 한다. 모종의 거래를. 근데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거래.

암벽이 다 지나쳐 가려 하자 한 번 더 들리는 웅성거림.

그곳에서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터럭을 쭈뼛 세웠다. 뒤를 잡힌 건 내쪽이니. mp를 들으면서 내려왔으면 덜 심심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내 기운에 직접적인 위해, 장난은 가하지 못 할지라도 방심하면 간적적으로는 가능할 거니까. 나 역시 오랜만에 야차와 같은 기괴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은 양이고, 양인 사람은 양의 마을에서 산다.

귀는 음이고, 양인 사람이 없는 음의 산에 모인다.

 

 

과천 역. 폰으로 역 터널을 찍고 가는데

"야, 너!"

어떤 양아치 새끼가 삥을 뜯으려고 그러나, 내게도 이런 일이! 으헝헝 감격하며 바로 태세를 갖춘다.

근데 아는 놈.

어디 갔다 오냐? 산 갔다 옴.

어떻게 바로 알아 봤냐? 너 확 튀잖아(특이하잖아?). 하긴, 내가 좀 잘생겼지.

나는 놈의 양 목살을 꼬집어 땡기면서 "도토리 은혜도 모르는 놈".

다음에 한 번 꼭 보자고, 자기 지금 폰 꺼졌으니 전화 달라고. 썩 챙겨 줬지만 별 거 없는 놈이었으나 그래도 "성민"이라고 문자 하나 보낸다.

 

전철 안에서 물을 마시려고 뚜껑을 여는데, 뚜껑에 얼음이. 그걸 보고 헛웃음을 치자 사람들이 쳐다 본다. 위쪽인데 어떻게?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9?통 왔었다. 보통은 안 그러신데 묘하게 걱정이 많이 되셨었나 보다. 어머니는 머리까지 아프셨다고. 그냥 뭐, 아이젠도, 등도 갖고 가지 않아 그랬으려니.

 

곱창에 막걸리를 먹고 집에 걸어 가는 길에 간판을 본다. ... 너의 이름은 왜 고유 명사인 거니.

 

 

"괜찮다"에서 촉발된 어지러진 마음.

내려 놓고 오고자 올랐으나, 강해지기만 한 념. 산에서도 나는 되돌아 내려갈 수 없었다. 떨어져 죽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더 쉬우니까.

오늘은 불덩이 된 몸에 한참을 뒤척였던 어젯밤에 오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던 오늘. 오늘밤, 나의 마음은 산산이 조각나 유리가 되어 하늘에 별이 되어 박히리.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봤던 어제의 그 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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