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북 위협 고조 속 미국 '쓸 수 있는' 저위력 핵무기 속속 등장
북한의 군사적 도발 및 핵무력 증강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지하벙커 등을 족집게 타격할 수 있는 미국의 신형 전술핵 ‘벙커버스터’ B61-12 폭탄 운용시험이 완료됐다고 미 연구소가 최근 밝혔다. 지난해 신형 저위력 핵탄두 (W76-2)를 장착한 트라이던트 II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실전배치에 이어 미국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저위력(저강도) 전술핵무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으로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하거나 유사시 남한에 선제 핵공격을 할 경우 미국의 저위력 전술핵 사용 가능성이 커져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저위력 핵무기들은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직접 나서 군사적 도발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여정은 13일 밤 담화를 통해 “조선 당국이 궁금해 할 그 다음의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암시한다면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며 “우리 군대 역시 인민들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북한군에 의한 무력도발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12일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리선권 외무상 명의의 담화에서 “우리 공화국(북한)의 변함 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ICBM(대륙간탄도미사일)·SLBM 등 핵무력 증강을 계속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뉴욕주에 위치한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 참석, 연설을 통해 “우리의 적들에게 알리겠다”며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우리가 싸운다면 우리는 단지 싸워서 이길 것”이라며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고강도 추가도발 등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강력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대북 경고의 의미도 담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 미 최신형 전술핵의 핵심 B61-12 핵폭탄, F-15 투하 성능시험 완료
유사시 주석궁 지하벙커 등 100~150m 이상 지하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지하벙커들을 초토화할 수 있는 미국의 신형 핵무기는 3종류가 꼽힌다. 우선 전투기와 폭격기에서 투하되는 B61-12 전술핵폭탄이다. 미국 핵무기 개발기관인 샌디아국립연구소는 지난 8일(현지시각) “F-15E 스트라이크이글 전투기의 B61-12 핵폭탄 투하 최종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개량형 저위력 전술핵폭탄인 B61-12는 미국이 핵무기 현대화 계획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양산을 추진 중인 무기다. 스티븐 새뮤엘즈 샌디아국립연구소 B61-12체계 팀장은 “프로그램 자체는 2010년에 시작됐지만 전투기 호환성 실험은 2013년부터 진행됐다”면서 “지금까지 지상실험, 가상비행실험, 설계 등 준비태세를 증명하기 위한 작업이 선행됐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앞으로 B-2스텔스 전략폭격기와 F-16 C/D계열 전투기, F-35 스텔스기와의 호환성 실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소가 이날 발표한 내용 중 주목할 것은 동맹국의 전투기에도 이번 실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다. 이는 미국과 핵무기 공유협정을 맺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5개 회원국(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의 F-35 스텔스기 등도 B61-12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들 5개 회원국 6개 기지에 150여발의 B61 계열 핵폭탄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시험은 우리 공군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는 이번 시험에 투입된 F-15E를 개량한 것이다. 공군은 F-35A 스텔스기도 도입중이며 내년까지 40대 도입이 완료된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핵공유 협정을 맺을 경우 우리 공군 F-15K전투기나 F-35 스텔스기도 B61-12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부 무장창에 2발의 정밀유도폭탄을 장착한 F-35 스텔스기. 우리 공군 F-35도 미국과 핵공유 협정이 맺어지면 내부 무장창에 B61-12 최신형 전술핵폭탄을 장착할 수 있다./미 공군
◇ 북한에 B61 핵폭탄 20발 투하시 사상자 100명 미만 발생?
B61-12는 B61 전술핵폭탄의 최신형 모델이다. B61은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유일한 미국의 전술핵무기로 자리잡아왔다. B61는 9개 가량의 모델이 개발됐는데, 0.3~340 킬로톤(kt)의 다양한 위력을 갖고 있다. 말이 전술핵무기이지 340킬로톤급 모델은 수소폭탄 위력이다. B61-12는 정확도를 높이고 방사능 낙진 등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해 ‘쓸 수 있는’ 핵무기로 개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종전 핵무기는 너무 위력이 크고 방사능 낙진 등 부수적 피해도 커 현실적으로 사용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B61-12는 그런 단점을 보완한 셈이다. 구형 B61 폭탄이 100m의 정확도를 갖는 데 비해 B61-12는 30m 정도로 정확도가 대폭 향상됐다.
B61-12의 위력은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최대가 50킬로톤 정도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3배 정도 위력이다. 하지만 땅속을 깊게 파고 들어가 터지면서 실제로는 750킬로톤∼1.25메가톤(Mt·1Mt은 TNT 100만t 폭발력)의 폭발효과를 낸다. 평양 주석궁 인근의 지하 100m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김정은 벙커’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다. 가격은 1발당 2800만 달러 가량으로 추산된다.
지난 2017년 봄 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발간한 인터내셔널 시큐리티(International Security)지에 실린 ‘새로운 시대의 무력파쇄공격(The New Era of Counterforce)’ 논문에는 기존 전략 핵무기와 저위력 핵무기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실려 관심을 끌었다. 이 글에는 북한 내 다섯 곳의 목표물을 대상으로 475킬로톤 위력의W88 핵탄두(수소폭탄)를 장착한 트라이던트 II 미사일을 사용했을 때와 저위력 핵무기인 B61전술핵폭탄을 사용했을 때를 비교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담겼다. 우선 트라이던트 II 미사일을 이용해 10발의 W88 핵탄두를 투하했을 경우 엄청난 위력으로 인해 남북한에서 200만~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0.3킬로톤의 초저위력 B61 핵폭탄 20발을 투하했을 때 목표지점에서만 100명 미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훨씬 적은 부수적인 피해로 인해 미국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앞으로 핵탄두 장착 토마호크 미사일도 개발돼 대북 핵 억지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미 해군
◇ 저위력 핵탄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탄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도 유사시 북 타격 가능
두번째로는 트라이던트 II SLBM에 장착되는 W76-2 신형 저위력 핵탄두다. W76-2 핵탄두의 위력은 5~7킬로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히로시마 투하 원자폭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도가 높고 슈퍼 신관을 사용해 지하벙커 파괴에 효과적인 ‘핵 벙커버스터’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잠수함에 탑재되기 때문에 동해는 물론 서태평양에서도 은밀히 물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타격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세번째로는 핵탄두 장착 토마호크 순항(크루즈) 미사일이 꼽힌다. 지난해 5월 미 국방부 고위관리는 북핵 대응을 위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해상 순항미사일 투입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의 대안으로 ‘강하게 추진하고(pressing hard)’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이라크전 등 주요 분쟁(전쟁)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돼온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핵탄두 장착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토마호크는 1600~2500㎞ 떨어진 목표물을 3m 이내의 정확도로 타격할 수 있다. 450㎏짜리 재래식 탄두 또는 200킬로톤급 W80 핵탄두를 장착한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냉전 종식 이후엔 재래식 탄두형만 운용되고 있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이지스함과 핵잠수함에 모두 탑재할 수 있지만 신형 핵탄두형 토마호크는 핵추진 잠수함에 주로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스함은 한반도 근해에 출동할 경우 표시가 나고 북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핵추진 잠수함은 북한이 출동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365일 미 핵추진 잠수함이 한반도 근해에 와 있다는 전제 아래 대비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겐 효과적인 대북 억지 수단이 되는 것이다. 특히 무려 154발의 순항미사일을 탑재하는 오하이오급 핵추진 잠수함이 유력한 탑재 수단으로 거론된다. 미국이 핵탄두 토마호크를 다시 배치한다면 과거 개발했던 200킬로톤급보다는 신형 저위력 핵탄두를 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술핵무기인 B61 핵폭탄 분해 모습.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핵무기가 사용될 경우 활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무기다. /미 FAS(과학자협회)
◇ 전문가“미국과 핵공유 협정, 한·미 핵동맹 서둘러야”
미국의 이 같은 저위력 핵무기 개발은 지난 2018년2월 발간된 트럼프 행정부의 첫 핵태세검토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 NPR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꿈을 안고 미국이 핵무기 역할 축소와 핵군축을 선도하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새 NPR은 적대 세력의 각종 안보위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국이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춘 ‘맞춤형 핵전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NPR은 구체적으로 일부 SLBM의 핵탄두를 저위력 전술핵탄두로 교체하고, 중장기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해체한 핵탄두 장착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다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이 핵전력 강화 및 무력도발 의지를 천명하고 미국이 신형 저위력 핵무기들을 속속 등장시킴에 따라 우리나라도 나토와 같은 핵공유 협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저위력 핵무기들은 핵무기가 너무 위력이 커 현실적으로 ‘쓸 수 없었던 무기’에서 ‘쓸 수 있는 핵무기’로 바꿔줘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확장억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한·미 핵공유 협정 등을 통해 ‘한·미 핵동맹’을 구축하는 게 더욱 시급하고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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