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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상 후보 정리
1.노벨 물리학상 제프리 힌튼 (영국)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BA)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박사) 인공 신경망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컴퓨터과학자, 인지 과학자이다. 다층 신경망을 훈련하기위한 역전파 알고리즘을 대중화했으며 딥러닝 분야의 획기적인 선두주자로 여겨진다. 그는 1985년 홉필드 네트워크에 신경망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자가 패턴 창조를 통해 대규모 병렬 연산을 가능케 하는 볼츠만 머신을 제안했다. 그후 1986년 다층 퍼셉트론과 (오차)역전파 알고리즘을 증명하면서 XOR 적용 문제를 해결하였다. 힌튼은 2018년 컴퓨터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영국의 튜링상을 수상했고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존 홉필드 (미국) 미국 스와스모어 칼리지 (학사) 미국 코넬 대학교 (박사) 미국의 과학자이며 시카고의 물리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코넬 대학교 박사졸업이후 벨 연구소에 재직하며 2년동안 헤모글로빈 구조를 분석했다. 훗날 그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홉필드 네트워크다. 원자가 작은 자석처럼 행동하는 스핀 개념을 활용한 패턴 저장 및 복원 네트워크로,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상태의 패턴을 저장해두고 네트워크에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패턴이 입력되면 저장된 패턴 중 가장 비슷한 것이 복원되는 방식이다. 이는 몇 년 뒤 제프리 힌튼의 볼츠만 머신으로 보완되며 단층구조 퍼셉트론의 한계점을 해결하며 인공신경망 분야에 혁명을 일으키게된다. 2.노벨 화학상 데미스 허사비스 (영국)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사)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박사) 영국의 컴퓨터과학자이자 딥마인드의 CEO이다. 그는 런던에서 AI기업 딥마인드를 창업했으며, 훗날 2016년 딥마인드는 그 유명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개발해냈고 2020년에는 단백질 분석 인공지능 알파폴드를 개발해냈다. 노벨상 수상에 큰 영향을 끼친것은 알파폴드였다. 이 알파폴드의 등장이후 기존까지는 최소 몇개월, 길게는 몇년이 걸리는 단백질 구조 분석을 단 하루만에 찾아내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달성했다. 알파폴드는 계속 개량되어 후속버전이 나오고있으며, 2020년부터 현재까지 4년만에 3억개에 달하는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찾아냈다. 이것은 앞으로 불치병이였던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것이다. 존M. 점퍼 (미국)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학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석사) 미국 시카고 대학교 (박사) 미국의 화학자이며 컴퓨터과학자이다. 현재 딥마인드에서 재직중이라 미국이 아닌 영국에 거주하고있으며 앞서 서술한 데미스 하사비스의 동료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높은 정확도를 단백질 구조로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인 알파폴드5를 개발해냈다. 그는 알파폴드 팀이 향후 1억개의 단백질구조를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노벨 생리학상-의학상 빅터 앰브로스 (미국)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학사,박사) 미국의 발생 생물학자이다. 그는 위대한 업적은 최초로 마이크로RNA를 발견한것이다. 그가 발견한 마이크로RNA 분자는 척추 동물을 포함한 많은 종에서 보존중인것으고 밝혀졌고 이러한 발견은 다른것들과 함께 Ambros가 실제로 현재 마이크로RNA로 알려진 보존된 기능을 가진 소형 RNA 종류를 발견했다는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마이크로RNA 발견과 전사후 유전자 조절에서의 역할에 대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4.노벨 경제학상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영국 요크대학교 (학사) 영국 런던경제대학 (박사) 터키 태생의 미국 경제학자이다. 그가 발간한 가장 유명한 저서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가 대표적이다. 이 저서의 내용을 서술하자면 기술 최전선에서의 경제 성장에는 정치적 안정이 필요한데, 마야 문명은 그런 것이 없었고 창조적 파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점과 과점권 부여에 대한 제도적 제약 없이는 경제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훗날 영국이 글로벌 초강대국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689년 시행된 영국의 권리장전이 그런 제약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제모을루는 "국가 간 개발 차이는 전적으로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며 문화, 날씨, 지리 또는 최상의 정책과 관행에 대한 지식 부족에 일부 차이를 기인하는 다른 이론을 거부한다. 예를 들어, 소련은 세계의 일부 첨단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창조적 파괴의 부족으로 인해 1970년대부터 그 기세가 고갈되었다. 사이먼 존슨 (영국)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학사)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석사)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박사)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경제학자였기도하다. 그는 새로운 기계와 생산 기술 및 임금 간의 관계, 기술이 사회적 재화를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방식, 인공 지능에 대한 열광의 이유에 관한 세 가지 질문을 다루는 저서를 발간했다. 권력과 진보는 기술이 자동적으로 사회적 선을 만들어내지 않고, 그 혜택이 소수의 엘리트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인공지능(AI)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며, 일자리와 임금, 민주주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사회적 이익을 위한 활용 수단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비전을 제공했다고 보았고 그는 진보적 시대가 모델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로빈슨 (영국) 영국 런던경제대학 (학사) 영국 워릭대학교 (석사) 미국 예일대학교 (박사)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그는 어떤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고 다른 나라를 갈등으로 이끄는 기본적인 경제적, 정치적 제도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다르게 만드는 요인을 연구한다. 로빈슨이 집필한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은 민주 사회의 창조와 공고화를 분석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엘리트가 그것을 전복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없을 때 공고화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은 (1) 시민 사회의 힘, (2) 정치 기관의 구조, (3) 정치 및 경제 위기의 본질, (4) 경제적 불평등의 수준, (5) 경제의 구조, (6) 세계화의 형태와 범위에 달려 있다. 또한 그는 근대화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있다. 5.노벨 평화상 일본 원폭 및 수소폭탄 피해자 단체연맹 (일본) 일본의 단체연맹이다. 그들은 1956년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정부에 핵무기 폐기를 위한 로비 활동을 펼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조직의 활동에는 수천 건의 증인 진술서 제공, 결의안 및 공청회 발행, UN을 포함한 다양한 국제 기구에 연례 대표단 파견, 세계 핵무장 해제 옹호 등이 포함되었다. 6.노벨 문학상 한강 (한국) 한국 연세대학교 (학사,석사) 한국의 작가이다. 그녀는 대체적으로 대중적인 재미와 거리가 먼, 사람의 몸을 테마로 삼은 불편하고 파격적인 소설들을 쓴다. 대표작으로는 "내 여자의 열매"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있다.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 라는 연작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내용을 하고 있는 채식주의자 연작은 영화로 제작되어 2010년 2월에 개봉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코닭고정닉
ㄱㅇㄷ) 소설이 원래 역사를 잡아먹는 과정
역사는 인류의 기억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기억이 어떤 외부 요인으로 인해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되는 일이 있듯이 때때로 역사 또한 기록 아닌 누군가의 창작물로 사회의 기억이 왜곡되버리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이 분야 원탑 오브 원탑은 단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일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위촉오 시대의 이야기에 대해 '사실 정사에서는...'이라는 소릴 하면 정사충이란 비아냥을 듣는 지경까지 와있다. 여러 이유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 할 뿐, 한국에도 여럿 역사의 왜곡이 존재하지만 오늘은 흔히 '양만춘'이라 불리는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당 태종의 침공을 막아낸 안시성의 성주는 양만춘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없다 .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잊혀졌으며 그에 대해 기록한 삼국사기에조차도 '역사에서 그 이름을 잃어버리니 심히 애석하다' 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안시성 성주에 대한 기억은 당대...는 아니고 그 시대에 그나마 가까운 시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다. 물론 안시성의 굳건했던 성벽마저도 세월 속에 사라지고 말았는데 아무리 대단한 위업을 세운 명장이더라도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이름이 잊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시성 성주를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해군에선 그 이름을 딴 양만춘함이라는 함선이 2014년에 취역해 오늘날에도 버젓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체 이 양만춘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알려진 건 조선 중후기에 와서이다. 삼국사기가 쓰인 고려시대까지만해도 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 현종 시대에 와서 갑자기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퍼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송시열과 함께 노론을 이끈 송준길의 '동춘선생별집' 이라는 문집에서 시작한다. 시간을 돌려 이 시대로 가보자 "요새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 사이에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소문이 도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거냐?" "아 그거요? 윤근수라는 양반이 중국인에게 듣고 기록했다고하던데요?" 송준길에 따르면 그 또한 기록을 옮겨 적은 것이며 윤근수라는 사람이 중국인에게 들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시간을 50년 앞으로 돌려 윤근수의 시대로 가보자 윤근수는 1616년에 죽은 조선 중기 문인으로 그가 쓴 월정문집에 안시성 성주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다. '(중략)임진왜란 뒤에 명나라 장수로 온 자 중에 오종도가 있었는데, 그가 내게 말하길 안시성주 성명은 양만춘으로 태종동정기에 써있다' '얼마 전 감사 이시발을 만났는데 그 또한 일찍이 당서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이야발ㅋㅋ 아무튼... 우리는 이 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당서연의는 연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593년 웅종곡이라는 명나라인이 쓴 소설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일대기를 각색한 그 시대 역사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태종동정기는 이 당서연의의 한 부분을 오종도가 인용하면서 나온 이야기다.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야인시대를 감명 깊게 본 미국인이 한국인 대붕이한테 야인시대에서 본 한국의 근대를 설명해주고 한국인 대붕이는 실제로 김두한이 미군과의 협상에서 4달러 임금을 받아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만 윤근수는 그 출처가 소설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안시성주의 이름을 알 방법이 없었는데 명나라 '소설'에서 비로소 양만춘이라 한다 덕분에 그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천고의 통쾌함이 아니겠는가' 라고 써서 보냈다. 역사에 왜곡과 거짓이 섞여 드는 건 보통 이런 패턴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 시대에도 역사학자들은 존재했고 이런 웃지 못할 헤프닝에 의문을 품는 지식인들 또한 여럿 있었다. 북학파였던 이덕무는 이에 대해 '세간에선 안시성주를 양만춘이라 하는데 그 출처인 윤근수의 기록에선 이미 당서연의라는 소설에서 나온 이름이라 밝히고 있으니 그 설은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이규경 또한 이 양만춘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다 18세기 지식인들은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그저 허구의 창작이라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실제 역사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부활한 건 조선을 넘어 대한제국마저 망해가던 시대였다. 나라의 존립이 바람 앞에 등불과도 같던 시기 지식인들은 역사적 사실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개화파 지식인이자 대한제국 내부대신을 지낸 유길준은 '을지공의 지략에는 수양제가 울고 가고 양만춘의 용맹에는 당 태종이 혼이 났다 자주 독립 이러하니 어느 누가 걸을 손가' 라는 민족의 각성을 부르짖는 시를 썼다. 대한제국이 망하기 1년전 1909년, 대한제국매일신보 또한 '안시성 중 양만춘도 백만병이 에워싸서 무수 곤란 겪을 적에 토성 굳게 쌓아가며 굴복 않고 지켜내니 당병 절로 물러가니 인내 소치 아닌가, 슬프도다 우리 동포 약육강식 이 시대에 희망점을 앞에 두고 용진심을 더하여서 인내력에 실력 얹어 자강불식 나아가면 어려울것 없으니라' 라며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양만춘설을 예토전생해낸다. 그렇게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한민족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되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름 잊힌 안시성주를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그 잘못된 이름을 붙인 함선까지 만들어 그를 기릴 정도이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카다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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